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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온 후 결심한 것이 있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 여행을 가는 것이다.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여행을 다녀오면 뇌에 윤활유가 칠해진 듯 사는 게 가벼워진다. 그래서 작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후에는 속초를 다녀왔다. 그리고 작년 2학기를 마치고는 도쿄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었다. 연말과 연초에는 여행객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조금 늦게 1월 15일에 나는 도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숙소를 긴자에 위치한 호텔로 정했다. 내가 가고 싶은 장소들을 가기에 교통적으로 가장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리타 공항에 착륙한 뒤, 긴자의 호텔로 체크인을 하러 갈 때에는 스카이라이너라는 고속열차를 이용했다. 이번이 일본을 4번째로 방문하는 것인데,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 보였다. 기차와 주택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이다. 철도가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 늦은 점심으로 일본의 텐동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텐동 텐야를 먹었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었다. 숙소근처라 이 음식점 앞을 후에도 많이 지나 다녔는데, 지날 때마다 기름냄새는 정말 향기로웠다. 숙소에 짐을 풀고 긴자역 지하에 위치한 삿포로 블랙라벨 더 바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주변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장소였는데, 맥주 맛이 정말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나는 원래도 일본맥주를 가장 좋아한다. 미국의 맥주는 너무 시원한 맛이 강하고 유럽맥주는 특유의 향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맥주는 내 기준에 모든 것이 적당하고 맛이 깔끔하다. 특히 기린맥주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때 먹은 생맥주는 삿포로였지만 정말 기가 막혔다. 특이하게 지하철 출구쪽에 간단하게 서서 마실 수 있는 곳이었는데 첫모금을 마시고 감탄을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 긴자역을 지날 일이 생겨 또 방문했다. 그리고 츠타야 서점과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간단하게 둘러본 후 스시잔마이 본점에 갔다. 나는 최근에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비싼 가격의 음식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먹자는 마인드를 가졌었다. 해외의 고급음식은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의 추천으로 스시의 본고장에서 스시를 경험해보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시잔마이는 특히 참치를 전문으로 하는데, 참치가 입에서 녹아 없어지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참치 스시와 생맥주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간단하게 해결한 후 나는 와세다 대학교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가 특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문학 특유의 분위기에 빠졌고 일본여행을 위해 재독한 상실의 시대는 굉장한 작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읽었던 이 책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지금 읽어보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을 즐기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오버랩되며 괜히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와세다에 가는데 cpa가 쓰여져 있는 읽을 수 없는 일본어로 되어있는 간판이 달려있는 건물을 보았는데, cpa를 준비하는 내 친구들이 생각났고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와세다 대학의 분위기는 뭔가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주변에서 한국의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집들을 보지 못해서 놀랐다. 이곳의 명물로 알려진 시계탑은 멋있었다. 이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하늘이 굉장히 맑았는데 덕분에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관에 도착했는데 솔직히 외관은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기념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건물로 표현한 느낌이었다. 흘러나오는 음악들과 인테리어가 그의 작품들처럼 굉장히 모던했다. 계단에 걸려있던 그림인데 뭔가 귀여워서 내 눈을 사로잡았다.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시킨 후에 괜히 하루키의 책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었다. 나만의 예술적 의식행위였다. 기분은 굉장히 좋았다. 알바생들이 하루키의 작품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소세키 기념관에 갔다. 이곳 역시 굉장히 깔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즐기기에는 조금의 한계가 있었다. 안내 표지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신주쿠의 케이스티파이 매장에 가서 간단한 쇼핑을 했다. 가는 과정에서 버스를 탔는데, 일본 어린이들이 버스에서 내리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치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이후에 신주쿠 교엔에 갔다. 교엔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으로 알게된 곳이었는데, 찾아보니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대규모의 공원이 있는 것이 신기했고 입장료는 생각보다 비쌌다. 맑은 하늘이 교엔을 더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리고 언어의 정원의 ‘그 정자’를 발견했다. 산토리 맥주와 초콜릿이 저절로 떠올랐다. 교엔은 여러가지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일본식으로 꾸며진 곳이 가장 나의 취향이었다. 다음으로는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그 계단’에 갔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그 계단이었다. 다시 긴자로 돌아와서 전날에 먹었던 삿포로 생맥주를 다시 마셨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좋은 순간이었다. 저녁으로 히츠마부시를 먹었다. 전부터 장어덮밥을 굉장히 먹고 싶었는데 장어덮밥의 본고장 일본에서 먹게 되어 기뻤다. 긴자 우나후지에 갔는데, 인생에서 먹은 음식들 중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예상가능한 범주내에서 가장 맛있는 맛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장어를 입에 넣었을 때 녹아 내렸다.